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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학술자료] 부정적인 치료반응: 자기애적 대상관계를 중심으로 등록일 2020.03.18
글쓴이 김정욱 조회 600
저자: 김정욱
제목: 부정적인 치료 반응: 자기애적 대상관계를 중심으로 한 이론과 사례
출처: 임상심리학회 추계학술대회 워크샾(2004)


프로이드 이후 많은 분석가들이 부정적인 치료 반응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대체로 부정적인 치료반응은 내담자가 치료과정에서 진전을 보인 이후 갑자기 치료시간에 늦게 오거나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자기탐색을 잘 하리라 기대하였는데 꼬투리나 잡으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지난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부정적인 치료반응의 이면에는 내담자의 무의식적 죄책감, 시기심, 파괴성 등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내담자의 측면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치료실제에서 어떻게 다룰지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본고에서는 부정적 치료반응을 주로 자기애적 대상관계(narcissistic object relations)와 파괴적 나르시즘(destructive narcissism)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치료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자기애적 대상관계

대상관계란 한 개체가 자신의 세계와 어떻게 관계하는 지를 의미하며, 이는 근본적으로 무의식적인 것이다. 이것은 아주 복합적인 심리 조직인데 한 개체의 관계 대상에 대한 심리표상의 세계와 그가 선호하는 방어기제를 포함한다. 유아는 양육자와의 만남을 통해 심리내적인 대상관계를 형성해 가는데, 내적인 대상은 구조가 약할수록 선과 악으로 분리된 대상이 되고, 파편적일 수 있고, 나와 너, 안과 밖이 분화되지 않은 상태일수록 당시의 현실적 대상과는 다른 대상을 생성하게 된다(윤순임, 2004).
유아는 출생 이후 작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현실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을 때 전지전능 환상을 지니게 된다. 유아는 전지전능한 자기상 및 대상상을 구축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되풀이되는 분리경험, 공감의 결여, 버텨주고 간직하는(holding and containing) 환경의 부재는 자기애적 구조를 발달시킨다.
Riviere(1936)는 못 견딜 만큼 큰 상실불안은 외상이 될 정도로 황량하고 암담한 상황이며, 이 때 유아는 발달을 멈추거나 퇴행적으로 움직이게 된다고 하였다. 내담자가 대상상실 불안에 부딪칠 때 첫째, 대상에게 눈뜨기 시작한 사랑을 부인하고 둘째, 긍정적 전이에 대단히 큰 저항을 보이며 편집-분열 포지션으로 퇴행하며 셋째, 자신의 충동이나 공격성, 대상에 끼친 손상 등을 경시하면서 하찮은 일로 다루고 부정한다. 넷째, 치료 실제에서 방어기제로서 부인을 많이 사용하며, 전능한 자기애적 저항을 보이고, 부정적 치료반응으로 도피처를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Rosenfeld(1964)는 자기애적 대상관계가 의존성, 좌절 및 시기심에 의해 야기된 공격적인 감정을 방어하기 위한 존재 방식이라고 보았다. 자기애적 대상관계는 대상이 없는 상태가 아니며, 단지 자기애적 목적에서만 그리고 매우 전지전능한 방식으로만 대상과 관계를 맺는 것을 가리킨다. 자기애적 대상관계가 우세한 내담자는 자기와 대상간의 분리를 인식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시기심으로 인해 치료자를 평가절하 함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유지하거나 분석에서 받은 도움을 전적으로 자신의 공으로 돌리려 한다. 자기와 대상간의 분리를 인식하지 않는다면 시기심이나 공격적인 감정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내담자는 시기심으로 인해 분석가의 좋은 자질을 자신이 갖고 싶어 하고, 분석가를 독립된 개인으로서 보지 않으려 하며, 평가절하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분석은 난국에 이를 수 있다. 분석가와 내담자 모두 매우 좌절된다. 이러한 것이 분석가와 내담자 모두에게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이를 방어하기 위해 분석가와 내담자 모두 치료관계를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것으로 보려고 하고, 이를 방해하는 측면들은 부인하려 한다.
자기애적 대상관계가 확고하게 수립되면, 자기의 전지전능 환상을 유지하려 하며, 이때 현실과의 접촉이나 객관적인 자기관찰은 이러한 환상을 위협하므로 매우 위험하게 느껴질 것이다. Rosenfeld(1987)는 내담자의 이러한 전지전능한 존재방식은 자기자신에게 마치 좋은 친구나 스승처럼 의인화되어 체험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현 상태를 유지하라고 강력하게 암시하고 선전한다는 것이다. 내담자가 얼마나 자신의 전지전능함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어떤 것도 조용히 비판되고 무시되고 평가절하되고 왜곡된다. 그러나, 치료를 통해 내담자의 자기관찰 능력이 좋아지고 자신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이러한 통제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때, 내담자의 전지전능한 구조가 본색을 드러낸다. 이전의 친구같고 설득적이던 모습은 사라지고, 가학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구조에는 매우 원시적인 초자아가 숨어있어서 내담자의 관찰능력을 무시하며, 특히 내담자가 현실적인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무시하고 공격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전지전능한 구조와 시기하고 파괴적인 초자아를 호의적인 인물로 위장한다는 것이다. 내담자는 나아지려고 할 때 이 인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이 배은망덕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러한 방식의 죄책감이 부정적 치료반응을 일으키는 중요 요인인 것이다.
자기애적 전지전능 대상관계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내담자가 치료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깨달은 회기 이후에, 부정적 치료 반응이 일어나기 쉽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담자는 늦게 올 수 있고, 이전의 좋았던 체험을 완전히 씻어낸 것 같고, 이전과는 완전히 연결이 끊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분석가와의 좋은 체험만이 아니며, 도움을 받았던 내담자의 부분 또한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내담자는 뭔가에 의해 완전히 압도되었거나 뭔가 상실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상태에 대해 설명은 잘 하지 못한다. 그러나 치료가 진행되면서 이런 반응에 대해 세부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내담자의 거만하고 우월적인 부분은 치료를 비판하고 치료자의 개입에 대해 의심하게 만든다. 어떤 내담자는 정신분석이나 심리치료가 완전한 방법인지 되풀이해서 물었고, 상담자의 공감이 자기만족적인 개입이 아닌지 의심하였다. 내담자가 치료자를 믿고 협조하기 시작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할 때, 내담자의 전지전능한 마음은 내담자가 약하고 열등하다고 비판하고, 그 자신을 격렬하게 무시하고 충격을 가할 수 있다. 이때 내담자는 “내가 조각조각이 난 후에, 진전이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불평하게 된다. 이런 기간에 내담자는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고 그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은 불안에 빠진다.
자기애적인 문제가 있는 내담자는 항상 치료자에게 뭔가를 해주기를 요구한다. 조금만 의견이 다르거나 자신이 싸운 사람을 이해하는 표현을 하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치료자를 비판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에 심리치료를 무의식적으로 경시하고, 치료자로부터 받는 것도 경시한다. Kernberg(1975)는 자기애적 내담자들이 치료자의 능력과 기술, 지식, 이해 및 신념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시기하며, 실제 치료 장면에서 이것들을 망치거나 파괴하고 싶어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내담자들은 치료자가 실제 제공한 것을 ‘마술적인 것’으로 바꾸어 싶어 한다. 마술이 점차 효력을 읽으면서 치료자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치료시의 좌절로 인해 심한 공허감과 격노를 느끼게 되며, 나아가 치료자에 대해 시기심을 느끼며, 치료를 그만두겠다는 악순환을 일으키게 된다.

2. 파괴적 나르시즘

Rosenfeld(1971)는 파괴적인 나르시즘 이론을 주장하면서, 자기의 파괴적인 전지전능한 부분들이 이상화될 수 있고, 그것들이 위장하거나 침묵을 지키고 분열되어 있어서 그 존재가 모호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내담자는 이러한 부분이 있음으로써 오히려 전지전능감을 느끼고 매력적으로 느낀다. 이런 종류의 파괴적 나르시즘이 내담자의 성격구조의 특징일 때, 애정적이고, 돌보고, 상호의존적인 리비도적 대상관계가 평가절하되고 공격받고 파괴된다. 대상에 대한 욕구를 인정하거나 대상에 의존하려는 자기의 소망들도 역시 공격받고 파괴된다. 내담자들의 말이나 행동에서 그런 파괴적이고 전지전능한 소망들을 알아채기가 종종 어려운데, 내담자가 무의식적으로 그것들을 보호적이고 우호적인 것으로 보고, 또 매우 비밀스럽게 다루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파괴적인 우월감을 비밀로 한다. 자기의 파괴적인 전지전능 부분들은 종종 위장 되어 있거나 조용히 있으며, 매우 우호적인 것처럼 보이고, 모든 문제에 대해 빠르고 이상적인 해결책을 제공해줄 것 같은 약속을 하는 식으로 위장되어 나타난다. 자기 부분의 전지전능하고 파괴적인 소망들의 존재가 모호하기 때문에, 파괴적 나르시즘에 의해 지배되는 내담자들은 외부 세계와 별 관계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사실 이러한 종류의 관계 양상들은 의존적인 대상관계를 막고, 외부 대상을 영구적으로 평가절하 하는데 있어서 매우 강력한 영향을 지니며, 그 결과 심리치료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Kernberg(1975)도 자기애적 장애에서 공격성과 시기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는 파괴적인 공격성이 어느 정도까지 내담자의 인성의 전체를 차지하는지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Kohut(1971)의 경우 자기애적 격노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파괴적인 나르시즘과 거리가 있다. 자기애적 격노는 내담자가 자기애적 상처를 받았거나 무시받았거나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 일어난다. 내담자가 분석에서 잘 이해받았다고 느끼게 되면 자기애적 격노는 가라앉게 된다. 그러나, 파괴적인 자기애적 내담자는 누군가가 사랑스럽고 이해적이고 친절하면 경멸하고, 가학적인 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사랑은 약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내담자들은 치료에 대해 오래 저항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Rosenfeld(1987)는 나르시즘을 상세히 연구하려면 리비도적 측면과 파괴적 측면을 구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였다. 나르시즘의 리비도적 측면이 상대적으로 우세할 때, 내담자의 전지전능한 자기가 위협을 느끼게 되면, 분석 관계에서 파괴성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런 내담자들은 현실에서 자기자신들이 갖고 싶은 힘이나 자질을 외부 대상이 가졌다는 것이 드러나면, 수치심과 패배감을 느낀다. 자기애적 상태의 주요 기능은 시기심과 파괴성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숨기는 것이다. 그러나, 내담자는 자신에게 그런 소망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분노감과 보복심이 줄어든다. 내담자는 자신의 시기심을 의식적으로 체험할 수 있으며, 분석가를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가치로운 외부 대상으로서 인식할 수 있다.
나르시즘의 파괴적 측면이 상대적으로 우세할 때, 파괴성을 드러나게 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시기심은 보통 더 격렬하고 직면하기 어렵다. 전이에서 자신과 떨어진 대상이자 삶과 선함의 원천이 되는 분석가를 파괴하려는 소망이 압도적이다. 내담자는 분석 작업을 통해 드러나는 자신의 파괴성에 대해 매우 위협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치료가 진전되면 격렬한 자기파괴 충동이 뒤따를 수 있다. 그들이 분석가에게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할 때, 그들은 죽거나 존재하지 않는 게 나은 것 같고, 어떤 분석적이고 개인적인 진전이나 통찰도 파괴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 지점에서, 그런 내담자들은 자주 분석을 포기하려 하며, 자주 그들의 전문적인 성공과 개인적인 관계를 망침으로써 자기파괴적인 방식으로 행동화한다. 이들 내담자들 중 일부는 매우 우울하고 자살을 시도하며, 죽고 싶고 사라지고 싶은 욕구를 공개적으로 표현한다.
Sinason(1993)은 ‘내부의 미친 목소리’라는 개념을 통해 파괴적인 나르시즘을 설명한다. 그것은 자아의 분열된 부분을 가리킨다. 클라인 모형에서, 자아는 매우 초기에 분열되어서, 자아의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부분은 환상 속에서 투사되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자기를 파괴할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들의 투사는 자아의 빈곤을 가져온다. 그것은 또한 편집증적 불안을 낳는데, 왜냐하면 자기가 부인한 측면들을 수용한 외부 대상들이 보복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Sinason은 ‘내부의 미친 목소리’가 하나의 인격체처럼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자신에게 충족시켜야 할 욕구가 있다는 걸 인정하기보다 죽고 싶어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사람이나 못시켜주는 사람이나 모두 미워하며, 그 미움과 부정주의는 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3. 치료

Rosenfeld(1987)는 부정적 치료 반응을 극복하기 위한 기술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내담자는 무력감을 느끼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완전히 모르고 있으며, 그래서 내담자가 저항한다고 주장해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다. 반면, 내담자 안에 작동하는 어떤 힘이 있어서, 강력하게 암시적이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는 해석이야말로 유용하고 내담자의 자아를 지지해주는 것이다. 이런 접근은 점차 자기관찰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내적인 과정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내담자 내부에 있는 분열된 자기 또는 대상은 설득과 암시를 하는 조언자의 역할이나 때로 위협적인 비판자의 역할을 통해 내담자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관찰해야 할 점은 이 조언자가 거짓 구실을 많이 대며, 자신의 주요 기능으로서 내담자의 자기애적 존재방식을 유지하려는 목적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 조언자는 내담자가 점차 발전시킨 좋은 관계를 공격하고 무시하며, 내담자의 중요한 대상관계를 파괴하게 된다.
이런 상황들에서, 자기의 의존적인 건강한 부분을 발견해서 구출하는 것이 내담자를 돕는데 필수적이다. 그리고 자기로부터 분열된 파괴적인 전지전능한 부분들을 충분히 의식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부분들이 충분히 드러날 때, 전지전능함이 줄어들 수 있다. 내담자는 점차 그가 그 자신의 전지전능한 유아적인 부분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반적으로 분석가의 중요한 치료적 기능은 내담자의 무의식적 감정이나 환상들을 말이나 생각으로 표현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유아기에 형성된 내담자의 초기 대상관계와 전지전능 방어가 수정될 수 있다. 점차, 내담자는 더 많은 감정들을 견뎌낼 수 있고, 갈등을 인식할 수 있으며, 그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것들이 좀더 가능해지면서 자기애적 전지전능 관계에서 야기되는, 내적 외적 기능의 큰 왜곡 필요성은 줄어드는 것이다(Rosenfeld, 1987).
내담자가 부정적 치료반응을 일으킬 때, 치료자 자신의 역전이를 살피고 객관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치료자는 먼저 내담자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검토함으로써 내담자가 피하려고 하는 감정이나 불안을 이해할 기회를 갖게 된다. Rosenfeld(1987)는 치료를 방해하는 치료자의 세 가지 요인을 들고 있다. 내담자에 대해 지시적인 역할을 하는 경향성, 시기가 적절하지 않고 모호한 해석을 하는 경향성, 지나치게 경직되고 제한적으로 특정한 노선의 해석을 하는 경향성이다.
Sinason(1993)은 치료란 자아가 분열되는 동기들을 해석하고, 자기의 이런 측면들을 부인하는 것에 대해 해석하고, 이들 부분들을 덜 분열되고 보다 일관된 자아로 재통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치료는 자아의 나머지 건강한 부분들을 파괴적인 자기애적 부분들로부터 떼어놓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자아의 좋은 측면들이 버틸 수 있게 도와준다.
윤순임(2004)은 구체적인 것을 전체적인 것으로 확산시키는 문제는 내담자가 자기와 세상 간에 적절한 거리를 두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고, 이는 내담자에게 큰 불안을 일으키고 유아적인 방어를 하게 만들어 대상관계에 더 큰 손상을 입히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파괴성을 다루는 해석은 파괴성을 직접 다루기 보다는 그 파괴성을 두려워하고 그 결과 때문에 불안해하는 내담자의 마음을 우선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을 통해서 잘못이나 공격성을 끌어낼 수 있는 공간이 생기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분석가는 지금-여기 분석가와 내담자 사이의 전이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정보를 인식하고 깨닫고 받아들임으로써 내담자의 긍정적 내적 대상과 심리적 조직화 상태에 따라 파괴성, 공격성을 통합함으로써 치유의 길을 트이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4. Rosenfeld(1987)의 치료사례(pp.91-96)

40세 남자인 마이클은 분석을 받기 위해 영국으로 왔다. 그는 기혼이었고 아이가 둘 있었다. 그는 꽤 성공한 전문직 종사자였다. 그러나 거의 매일 시를 읽거나 음악을 듣느라고 가족들과는 거의 접촉이 없었다. 그는 이렇게 철수된 상태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매우 우월감을 느꼈다. 모국에서 받았던 이전 치료에서, 그는 자신이 매우 거짓되고 고립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걸 점차 깨달았고,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가치감을 느끼면서 치료를 더 받기 위해 온 것이었다.
마이클은 거대 자기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대단한 지식을 갖고 있고, 또한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을 만큼 부자라는 강박관념에 집착하고 있었다. 런던에 와서 그는 삶의 수준을 낮추어야 했기 때문에 우울해졌고, 분석가에게 분노를 느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장애 때문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후 그는 잘 기능하기 시작했고, 분석을 받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자기-몰두와 자기 이상화 상태는 계속되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그에게 불평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내와 아이들이 얼마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지, 자신이 가족들을 얼마나 내버려두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강한 저항이 있었다.
마이클이 좋아지고 가족과 관계를 맺고 가족들로부터 철수하지 않으려고 하였을 때, 처음에는 행복하고 만족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갑자기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대해 큰 불안에 휩싸이곤 했다. 그는 투자한 일이 잘못될까봐 두려웠다. 치료에서 진전이 있거나 또는 치료를 필요로 할 때마다 이런 불안이 나타나곤 했다.
이렇게 우울하거나 불안한 상태에서는, 분석에 매우 늦게 오거나 빼먹기도 했으며, 온다고 해도 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크게 어려워하였다. 기껏 입을 열면, 할 말이 아무 것도 없다거나 분석을 받아도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오직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분석을 통해 그의 내부에 어떤 내적인 인물이 있어서 분석이 쓸데없다고 강요한다는 것을 점점 더 의식할 수 있었다. 그의 문제들은 극복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히 실패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여기 머무르는 것은 어리석으며, 가능한 빨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이클은 분석에 대한 이러한 내적 공격에 의해 완전히 압도된 것 같았다. 자기자신과 그의 사고능력에 대해서도 이러한 공격이 가해졌다. 이것이 바로 부정적 치료 반응에서 일어나는 특징이다.
마이클로 하여금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고들을 표현하게 했을 때, 또는 필자가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추측했을 때, 그는 일반적으로 필자의 말에 동의하였고 편안해질 수 있었다. 상담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그는 이러한 반복적이고 위협적인 상황이 이해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희망을 갖곤 했다.
분석의 처음 3개월 동안 마이클과 필자가 몰두했었던 문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마이클은 아버지가 매우 편찮으시고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고, 아버지를 빨리 만나러 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마이클은 별로 걱정(concern)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아버지가 굉장한 미웠고, 경멸하고 싶었고, 욕을 하고 싶었다. 내담자는 아버지에 대해 분노하였고, 몇 주 동안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속한 태도를 보였다.
마이클의 아버지는 직업적으로 매우 성공했었고, 마이클이 어렸을 때 자상했었고 좋은 학교에 보내주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마이클의 누이를 가장 좋아하였다. 마이클은 누이가 예쁘고 상냥해서 사랑받는다고 느꼈다. 마이클은 열심히 공부하고 적극적인 학생이 되라는 기대를 받은 반면, 그의 누이는 학교 생활을 잘 못했고 머리도 좋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고, 누이를 여전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누이는 19세 때 갑자기 죽었고, 아버지는 비탄에 빠져서 매우 우울해졌다. 아버지는 결국 일도 포기하였다. 마이클은 누이의 죽음 이후 아버지에 대해 잠시 걱정하였지만, 아버지가 마이클에게 즉시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매우 냉담해져서 아버지로부터 철수했었다. 마이클은 매우 고통스러웠고 누이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 질투심을 느꼈으며, 냉담함으로 복수심을 표현했다. 그는 아버지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으며, 어떤 사랑도 주지 않기로 했다.
마이클이 아버지에 대해 욕하는 걸 들으면서, 필자는 이러한 욕 뒤에 아버지를 향한 애정과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이런 감정을 파괴시키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고통스럽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그렇게 오랜 동안 아버지를 내버려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필자는 또한 그가 언제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부인해왔고, 아버지의 가장 좋아하는 딸이 되고 싶은 소망을 부인해왔음을 보여주었다. 마이클은 냉정해지고 점점 더 남성적으로 그리고 경쟁적으로 변함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사랑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여성적인 소망과 감정마저도 부인했었다. 사실 그는 누이처럼 따뜻하고 사랑스러워지고 싶었다. 점차,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나타났다. 그러자 그는 아버지를 보러가서 2주일간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 그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애정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이클은 아버지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매우 행복했었고, 뭔가 매우 중요한 것이 자신에게 열렸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때 그는 페니스와 질을 다 가지고 있는 꿈을 꾸었다. 다음 시간 그는 자신에게 여성적인 부분이 있고, 그래서 아이들과 아내에 대해 더 큰 애정을 보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었다. 일자리를 찾아냈으며, 개선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전형적인 부정적 치료반응이 뒤따랐다.
특히 생산적이었던 화요일 상담시간에, 마이클은 자기자신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었고 필자에게 훨씬 더 많은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금요일에는 40분이나 늦게 왔다. 그는 충격을 받았고 자기자신을 혐오하고 있었다. 그는 화요일 저녁 심하게 술을 마셨다고 했다. 그는 골아 떨어졌고 화요일에 대해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뭔가 앞을 가로막는 것 같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망쳤다는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무엇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 월요일 마이클은 처음에는 화요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담시간 중간에 갑자기 전날 밤 꾸었던 꿈이 기억났다. 꿈속에서 마이클은 이전에 알고 있던 여성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태도와 그녀를 둘러싼 분위기에 매우 감탄하였다. 그녀가 따뜻하고 이해심이 많고 매우 직접적이고 분명한 방식으로 말한다고 느꼈다. 그녀는 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애적인 사람입니다.” 꿈속에서 마이클은 이 여성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했으며, 거의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변명도 방어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 여성이 만들어낸 분위기가 매우 이해심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이클은 또한 그녀가 완전히 진실하며 자신에게 진실을 전해준다고 느꼈다. 마이클은 그녀가 그를 단지 내담자로서 돌보아주며, 확고한 자세로 그를 도우려 한다고 느꼈다. 그는 이전에는 그런 경험을 결코 해보지 못했음을 여러 번 강조했다. 어떤 해석이나 진실에 대해 그렇게 강하게 반응해본 적은 없었다. 마이클은 그녀가 말하는 방식에 감동을 받았고, 이에 대해 꿈속의 이 여인에게 깊은 감사를 느꼈다.
필자는 꿈속의 여인이 필자가 매우 이상화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왜 필자가 여자로 나오는가? 이것은 필자가 남자라는 것에 대한 숨겨진 공격인가? 이 꿈과 갑자기 폭음을 하게 만든 부정적 치료 반응은 무슨 관계인가? 꿈과 마이클의 연상에서 분명한 것은, 그에게 가장 감명을 준 것은 해석이 아니라, 치료적 분위기였다. 이것은 자신의 여성적인 부분을 보다 더 깨닫고자 하는 마이클의 욕구와 관련있었다. 필자는 꿈속의 치료자가 그에게 우월하거나 자기애적으로 보이지 않으면서 문제를 잘 전달했으며, 바로 이것이 마이클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에 심한 시기심을 느꼈다. 꿈에서 마이클은 비록 아프기는 했지만 진실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기심과 나르시즘을 깨닫고 있었다. 부정적 치료반응에서 그는 항상 자신의 자각, 감탄 및 분석에 대한 고마움을 공격하였다. 필자는 분석에서 진전이 있고 강한 애정과 감탄하는 감정이 나타남과 동시에, 매우 강렬한 시기심에 의해 압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꿈의 많은 부분을 해석하지 않았지만, 마이클이 치료에 대해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깊게 건드려졌다고 얘기하였다. 필자는 또한 이러한 좋은 경험과 함께 공격적인 감정이 동시에 나타났음을 주목하였다.
다음 시간, 마이클은 필자에게 말하기를, 지난 시간 이후 자신이 갑자기 필자와 지난 시간 필자의 조력적인 태도에 대해 강렬한 시기심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필자의 이런 태도에 위협을 느꼈다. 그는 필자처럼 되고 싶었고, 필자가 그를 대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고객을 다룰 수 있기를 원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많이 기다려야 하고 더 많은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는 거의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결코 필자와 꿈속의 그 여인처럼 될 수 없을까봐 두려웠다. 이 마지막의 강한 부정적 반응은 분명히 화요일 시간에 느꼈던 압도적인 긍정적 반응에 의해 야기된 것 같았다. 그는 그것에 대처할 수 없었고, 거의 참을 수 없는 시기심으로 휘저어졌다. 그는 술을 마시며 이런 고통스런 감정을 피했고, 이는 처음에는 경험을 완전히 씻어내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며칠 후 ‘놀라운’ 상담시간과 관련된 꿈을 통해 그렇게 참기 어려웠던 이런 감정들을 기억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이클의 사례에서, 부정적 치료 반응은 견디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긍정적 부정적 감정을 행동화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부정적 치료 반응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이클의 절망감과 모든 걸 망칠 것 같은 공포에도 불구하고, 꿈은 부정적 반응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진전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부정적 치료반응에서 고려해야 할 매우 중요한 측면이다. 이 일이 일어난 후에는 간헐적인 부정적 치료반응이 있을 뿐이었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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